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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구 집중으로 집값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난 8월 25일 고려대 대강당. ‘제도, 정치 그리고 경제성장’ 강연을 듣던 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이자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한국 부동산 시장에 관한 자신의 전망을 들려줬다.
고려대 학생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7명의 노벨상 수상자오늘의유망주
와 2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만났다. 2023년 김동원 총장 취임 후 학교 구성원에게 세계적 석학과 소통할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된 ‘넥스트 인텔리전스 포럼’을 통해서다.
학문의 깊이를 더하려는 고려대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신흥국 유망 학자 100명을 발굴해 학문적으로 교류하는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인 ‘K-클럽’을 출범시켜 올해 7월 황금성나비
한국에서 첫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전 세계 학문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거점이 돼 “10년 안에 노벨상 필즈상 튜링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올해 개교 120주년을 맞은 고려대의 혁신을 주도하는 김 총장을 최근 학교에서 만났다.
▷글로벌 석학과의 교류가 인상적입니다.
“통신과 수송이 어렵던 시절에는 학문이 대학바다이야기 온라인
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지만, 지금은 옆방 교수는 못 만나도 스웨덴에 있는 공저자와는 매일 화상회의를 하는 시대입니다. 중세시대 노마드처럼 ‘학자 노마드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의 토양을 만드신다고요.
“노벨상 수상자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대부분 ‘잘못 전화했다’고 답한다고 하더군요. 노벨상은 학계 엘온라인신천지
리트를 위한 상이 아니라 비록 실패할지라도 특별한 아이디어를 끈질기게 붙들고 외롭게 연구를 이어간 사람들을 기념하는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클럽을 만드셨습니다.
“인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자 네트워크인데,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석학이 주로 참여한 게 특징입니다. 학문 주도권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옮겨가아크론
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줄줄이 노벨상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학계의 흐름은 어떻습니까.
“국책연구원과 대학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1970년 시작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고려대의 협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12년 국내 최초로 학연교수제를 도입하고, 공동대학원을 설립했습니다. 두 기관이 장비뿐 아니라 학자도 공유하며 정보기술·나노과학, 생명·의학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죠. 이제는 ‘네트워크’가 대학의 힘입니다.”
▷인재 영입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과거엔 박사를 마치면 교수가 1순위였는데, 요즘은 대학과 기업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연봉 차이가 커지면서 대학이 기업과 경쟁하는 구조가 됐습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는 건 원천기술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천기술을 만드는 곳은 대학입니다.”
▷결국 대학이 살아야 한다는 의미군요.
“대학이 발전하지 못하면 해외 대학에서 원천기술을 사 오는 구조를 깰 수 없습니다. 국민소득 4만불 시대의 기로에서 후퇴한다면, 대학의 쇠락이 그 주요한 원인일 겁니다.”
▷미국 대학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과 비교해 볼까요. 이 학교 총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동문 중 기업인이 많고, 학교 랭킹과 규모도 비슷하고, O J 심슨 등 스포츠 스타를 배출했다는 점에서 고려대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하더군요. 돌아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등록금이 꼭 12배 차이 난다는 점만 다르다고요. 같은 랭킹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입시 제도가 문제인가요.
“아인슈타인이 한국에 살았다면 SKY(서울·고려·연세대) 대학엔 절대 입학할 수 없었을 겁니다. 수능 위주 입시 체제에선 국어·수학·외국어·탐구 중 한 과목이라도 부족하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어렵잖아요. 천재를 배제하는 입시 시스템인 거죠.”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수능은 자격시험화하고, 대학마다 추구하는 인재상에 맞춰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려대는 이타주의를 중시하고, 공동체적인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에 걸맞은 인재를 뽑아 사회에 배출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겁니다.”
▷입시 비리에 대한 걱정이 있잖아요.
“불량품이 나올까 봐 글로벌 기업에 제품 생산을 못 맡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명문대학이고, 학생은 우리의 제품입니다. 똑똑한 학생을 뽑아 최고의 제품을 내놓는 것이 명문대학의 역할입니다. 물론 리스크도 있겠지만, 큰 대학은 이런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졸업생들의 성과가 눈에 띕니다.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전 외무고시)·기술고시 합격자 배출 1위에 행정고시·입법고등고시 합격자는 서울대 다음으로 많습니다. 로스쿨 합격자 수, 공인회계사(CPA) 합격자 수도 압도적 1위입니다. 지난해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내와 해외를 포함해 대학원 진학률이 주요 대학 중 가장 높았다는 겁니다.”
▷젊은 학자가 늘고 있는 거군요.
“과거의 고려대는 공부보다는 정치와 사업을 잘하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와 국회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려대는 학자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10~20년 뒤에는 대학교수 중 고려대 출신이 가장 많을 겁니다.”
▷AI 시대에 ‘대학 교육 무용론’까지 나오는 현실입니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기능일 뿐입니다. 설득하고 소통하고 보살피고 협상하는 것,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은 AI가 절대 못 하는 일입니다. 문과대 건물을 새로 짓고 교수를 더 채용한 것도 AI 시대에는 인문학이 다시 각광받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대학의 기능은 두 가지입니다. 기술 선봉장으로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AI가 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잠재력을 키우는 겁니다. 결정적 순간에 윤리적, 철학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군대도, 정부도, 기업도 할 수 없고 오직 대학만이 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