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go !! 바로가기 go !!

이른 새벽, 바람조차 잠든 듯 고요한 지제브호수. 산과 하늘을 품은 수면은 거울처럼 맑게 반사되고 있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하이웨이Pamir Highway를 따라 운전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세계 최고의 로드 트립 중 하나로 꼽힌다. 옛 소련이 1930년대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했지만, 그 기원은 실크로드의 길목과 이어진다.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키르기스스탄 오시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평균해발 4,000m에 이르는 파미르산맥을 가로지른다. 풍경은 거칠고 황량하지만, 길 가의 산골 마을에선 손오공게임 소박한 삶이 이어진다. 이곳을 여행한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지제브계곡Jizev Valley이다.
지제브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가장 쉽고도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이다. 전체거리는 왕복 18km. 전문 장비도 필요 없고 물론 입장료도 없다. 당일 트레킹도 가능하지만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야 비로소 이곳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야마토게임하기 전기도, 인터넷도, 문명의 편리함도 거의 없는 곳이지만, 고요한 계곡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안겨 준다.



험준한 산맥과 거센 강물 위에 놓인 지제브 다리. 지제브계곡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바다이야기고래
배려와 친절이 이끌어준 길
루샨에서 바르탕계곡을 따라 트레킹 시작 지점까지는 약 28km. 정규 교통편은 없어서 택시나 투어 차량을 이용해야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나는 거대한 바르탕강Bartang River을 바라보며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로 했다. 차로 훌쩍 지나쳤을 풍경들을 발로 음 게임몰릴게임 미하며 걷는 길은 덥고 험했지만, 멀리 반짝이는 설산들이 걸음을 북돋아주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이 일으킨 흙먼지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파미르 하이웨이를 언젠가 오리라 마음먹었을 때부터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지제브였으니, 그리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황무지 같은 길 한가운데,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그늘 릴게임사이트 속에 들어서니 마치 에어컨을 켠 듯 서늘한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마음을 비운 채 걷다가 작은 승합차를 얻어 탔다. 호르그 삼거리에서 내릴 줄 알았는데 차는 바르탕계곡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이름 모를 마을 앞에서 내려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3km쯤 더 이동했고, 마지막으로 얻어 탄 차가 나를 지제브 다리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히치하이킹을 거듭하면서 이곳 사람들의 배려와 친절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홈스테이 숙소에서 제공하는 웰컴 티. 수제 요거트는 최고의 맛이었다.


초록의 오아시스 세상으로
지제브 다리에서 마을이 있는 계곡까지는 편도 약 9km. 해발 2,050~2,550m를 오르는 코스라 고소 적응에도 적당하다. 트레킹은 맑디맑은 지제브다라강Jizevdara River이 흙탕물 같은 바르탕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강 위에 걸린 나무다리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흔들려서 걱정스러웠지만 무사히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초록의 숲이 마치 오아시스처럼 펼쳐졌다.
지제브다라강의 에메랄드빛 물결은 눈부셨다. 바르탕강과 섞여드는 모습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완만했지만, 햇볕이 뜨거워 걸음은 더뎠다. 지제브다라강은 어느 순간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2km쯤 지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길은 외길이라 이정표가 없어도 찾기 쉬웠고, 미리 다운로드해 둔 맵스미Maps.me 지도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곳의 산은 높고 컸다. 깎아지른 절벽 산은 도저히 등반으로 올라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 황량함이 아름다웠다.



지제브계곡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었다. 그곳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계곡 양쪽의 산들은 웅장했다. 빙하가 흘러내린 흔적이 역력했고, 이 지역이 겨울에는 눈사태, 봄에는 산사태, 때로는 지진까지 겪는 곳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절벽 아래 한 사람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대자연의 거칠고 황량한 아름다움 속에서 오히려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경사도가 심하지 않지만 날이 더워서 올라가는 길은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계곡물의 아우성이 온 산에 울려 퍼졌다. 가끔씩 부는 바람이 빙하물의 냉기를 전달해 주었다.
여름에만 열리는 마을
계곡이 깊어지니 나무들의 키는 작아지고 물은 더욱 더 차가워졌다. 계곡이 점점 깊어지고 산봉우리들은 더욱 높아져갔다. 이런 산속에 마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고 1km 정도 올라가니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작은 길이 나왔다. 주변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흘러가는 수로도 보였고 집이 보였다. 흙이나 진흙으로 덮은 전통 돌집에 지붕은 나무나 잔디를 올려놓았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한 삶의 지혜였다. 옆쪽으로는 작은 문이 있는 축사가 꽤 많았다. 안에 가축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변 어디에서 방목을 하는 것 같았다. 길가에는 타지키스탄의 빵인 '논Non'을 굽는 커다란 탄두르 화덕이 있었다. 논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며,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눌러 얇게 만든 모양이 특징이다. 보통 차나 수프, 혹은 샤슬릭과 곁들여 먹는다.



타지키스탄의 빵인 '논Non'을 굽는 커다란 탄두르 화덕.


이곳이 지제브계곡의 첫 번째 마을인 차딩Chadin. 네 가족이 사는 아담한 마을로, 호수가 위치해 있다. 마을 입구에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홈스테이 손님인 줄 알고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내가 세 번째 마을로 간다고 하니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주었다. 참으로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 마을로 가는 길에는 살구나무가 지천으로 서 있었다. 나무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살구가 열렸다. 전날 루샨의 사과나무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과가 달려 있었다. 햇볕이 충분해서일까? 맛보기로 하나를 따 먹었는데 과즙이 많고 무척 달았다. 몇 알 따서 먹으니 피로도 조금 가셨다.
차딩에서 두 번째 마을인 보그진갈Boghjingal까지는 1.7km, 강변으로 이어진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30분 정도 걸렸다. 이곳엔 다섯 가족이 거주했다. 종일 길을 걸었으니 잠시 쉬어가고 싶었던 차에 계곡물 가까이에 있는 탑찬tapchan을 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탑찬은 나무나 철제 구조물 위에 매트와 이불, 때론 카펫을 깔아 올려두는 전통식 평상으로 낮에는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더운 여름밤에는 잠을 자기도 한다. 탑찬으로 올라가서 차를 한잔 주문했다. 여행객에게는 이곳이 탑찬 카페였다. 따스한 차를 마시니 온몸이 나른해졌다. 여기서 하룻밤을 머물 수 있다고 주인은 나에게 제안했지만 일단 마지막 마을까지 가본 후에 어디서 숙박을 할 것인지 정하기로 했다. 차를 주문했는데 과자와 견과류까지 한가득 내왔다. 주인장의 마음씀이 감사했지만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차만 마셨다.



저녁 무렵이 되면 강 건너편에서 방목했던 가축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보그진갈에서 세 번째 마을인 바르크틴Barukhtin까지는 약 1km. 바르크틴은 단 한 가족만이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마지막 마을인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온 가족이 탑찬에 앉아 있다가 이방인을 맞이하며 반갑게 웃어주는 모습이 편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숙박비는 200소모니(약 3만 원). 숙박과 아침, 저녁식사 포함이었다.
나를 안내한 여인은 여름에만 부모님을 도와주기 위해 지제브계곡에 머문다고 했다. 하룻밤을 보낼 숙소는 크고 아늑하고 깨끗한 전통 파미르 가옥이었다. 웰컴 티로 과자와 견과류, 사탕 그리고 체리잼과 요거트가 나왔다. 최소한의 삶을 살고 있는 지제브에서 받기엔 너무 과한 환대였다. 체리잼을 곁들인 요거트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수제 요거트였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 옷을 입은 지제브호수의 풍경.


해질 무렵이 되어가니 강 건너편 산에서 방목했던 소와 염소들이 돌아왔다. 지제브계곡의 마을들은 가축 방목도 함께했다. 방목했던 수십 마리의 가축들을 아주 어린 소녀가 이끌었다. 잘해야 열 살 정도? 학교에 가거나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아이인데 어른처럼 수십 마리의 가축을 축사 안으로 능숙하게 몰아넣었다.
저녁은 파스타.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첩첩산중에서 파스타를 먹었으니 맛을 논할 필요가 없었다. 전기는 사용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홈스테이에서 태양열로 전기를 이용할 수 있어서 휴대폰과 보조배터리 충전이 가능했다.
날이 너무 밝아서 자다 깨기를 몇 번 했다. 별 구경을 하러 나갈까 생각했지만 날이 너무 밝아서 별은 없을 것 같았다. 해발 고도가 높아지니 날씨도 선선했다. 기분 좋은 쌀쌀한 날씨 덕분에 이불을 덮고 아주 맛있게 잠을 잤다.



암갈색 절벽과 바람이 깎은 능선 사이, 지제브로 향하는 길.


새벽 호수의 경이로움
오전 6시 50분 출발, 보그진갈을 지나서 차딩마을 앞 호수 도착. 이른 아침의 호수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변을 두른 황갈색 바위산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 그리고 호수의 맑고 투명한 물빛이 겹쳐져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주었다. 바람조차 소리를 삼킨 듯 고요했고, 호수는 산과 하늘을 온전히 품어 거울처럼 반사하고 있었다.
차딩은 그저 지나치는 첫 마을이 아니었다. 지제브계곡이 품은 시간의 문턱이며, 태초 세상의 모습을 간직한 듯한 곳이었다. 지제브계곡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른 새벽 세상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느린 공기와 풍경이 마치 여행자의 숨결까지 붙잡는 듯 따라왔다. 역시 지제브에서 하룻밤은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차딩은 지제브계곡이 품은 시간의 문턱이며 태초 세상의 모습을 간직한 듯한 곳이다.


이곳에서 맛본 살구. 공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맑은 공기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가득 머금은 덕분일까.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이 도시에서 맛보던 과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 달콤한 맛은 지금도 이 계곡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빙하 물에 발을 담갔다가 너무 차가워 곧 발을 빼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눈에 익은 풍경과 정든 계곡에 작별을 고하고 지제브 다리로 내려왔다. 홈스테이 숙소에서 출발해 약 2시간 10분 소요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올라갈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루샨을 향해서 700m 정도 걸었을 때 지제브 다리 앞에서 보았던 승합차를 얻어 탔다. 루샨 숙소를 11km 남겨둔 마을에서 내렸다. 가게에서 산 시원한 생수 한 병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한 행복을 안겨주었다. 다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루샨의 숙소로 돌아왔다.
지제브계곡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었다. 그곳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여름에만 이곳에 머물고 여름이 끝나면 루샨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가축을 기르고 작은 밭을 일구며, 자급자족하며 하루의 리듬을 자연에 맞춘다. 겨울이 오면 계곡은 눈과 얼음에 갇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요한 땅으로 변한다. 그 덧없고 순환하는 단순한 삶의 풍경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을 하나를 마음 깊숙이 간직하게 되었다.



지제브에서 맛본 살구는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이 도시에서 맛보던 과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트레킹 팁!
지제브 다리까지 이동과 복귀 계획
정규 교통편이 없으므로 루샨이나 호르그에서 택시나 투어 차량을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지제브계곡으로 들어서면 인터넷뿐 아니라 전화 사용이 불가해서 연락이 어렵다.
당일 왕복 가능
아침 일찍 출발하면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풍경을 충분히 즐기고, 현지 문화를 체험하려면 하룻밤 묵는 것을 권한다. 지제브의 마을들은 작지만 대부분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 숙박은 어렵지 않다.
오프라인 지도 필수
계곡 안에는 휴대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구글맵에서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하거나, 맵스미Maps.me 같은 오프라인 지도 앱을 준비해야 한다.
트레킹 최적기
가장 좋은 시기는 여름과 가을(6~9월). 해가 길고 날씨가 안정적이라 걷기에 적합하다. 그 외 계절에는 눈이나 비 때문에 통행이 어렵거나 위험할 수 있다.
GBAO 퍼밋
지제브계곡은 GBAOGorno-Badakhshan Autonomous Oblast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지역에 속한다. 트레킹에 앞서 반드시 GBAO 허가를 발급받아야 한다.



트레킹 맵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