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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법정 스님. /맑고 향기롭게 제공
법정 스님의 입적 16주기(올해 추모 법회는 14일)를 앞두고 독특한 책이 한 권 출간됐습니다. 백형찬 작가가 쓴 ‘법정 스님이 사랑한 생활’(파람북)이라는 책입니다. 독특하다고 표현한 것은 법정 스님이 쓴 글 가운데 ‘풀과 꽃’ ‘나무’ ‘동물’ ‘차’ ‘사람’ ‘독서(책)’ ‘음악’ ‘미술’ ‘여행’ ‘글쓰기’ ‘선묵(禪墨)’ ‘공간’ ‘음식’ ‘생활소품’ 등 14가지 주제의 내용을 뽑아서 새롭게 정리-편집했기 때문입니다.
릴박스'법정 스님이 사랑한 생활' 책 표지. /파람북
법정 스님의 글을 좋아하고 많이 읽은 분이라면 각각의 글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읽은 듯한데…’ 싶은 생각도 드실 겁니다. 모두 스님이 생전에 펴낸 책에서 각각의 내용을 추려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자는 천주교 신자라고 합니다. 손오공게임 1989년 여름, 법정 스님이 수련원 원장을 맡았던 송광사 ‘출가 4박 5일’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법정 스님과의 인연이 되었답니다. 이 수련회를 계기로 문학전문지에 ‘출가 4박 5일’이란 작품을 응모해 수필가로 등단했답니다. 그런 인연 덕분인지 그는 법정 스님이 지은 모든 책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 책을 전부 읽고 앞에 말씀드린 내용의 주제별로 새 바다신2게임 로 엮어낸 것이 이 책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팬심’이면 이런 책까지 엮어낼까 싶습니다.
책에 실린 글이 모두 생전의 스님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지만 저는 책 뒷부분 ‘공간’ ‘음식’ ‘생활 소품’ 부분에 눈길이 갔습니다.
‘공간’은 스님이 살았던 ‘집’들 이야기입니다. 집 이야기는 곧 법정 스님의 ‘비우고 떠나기’의 연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속입니다.
불일암에서 스승 법정 스님(오른쪽)과 함께한 덕조 스님. /덕조 스님 제공
스님이 처음 출가해 머문 곳은 경남 통영 미래사입니다. 여기서 효봉 스님을 모셨지요. 영양실조에 가까울 정도로 ‘늘 배고프고 고생 10원야마토게임 스럽던 시절’입니다. 그렇지만 스님은 이후에 일상이 안일해졌다고 느껴질 때면 미래사를 다시 찾았고, 거기에서 초발심의 간절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하지요.
다음은 쌍계사 탑전입니다. 사소한 물건 하나 구하려 해도 구례읍까지 편도 40리길에 차편도 없어 한겨울에는 맨밥에 간장만으로 연명했지만 ‘선열(禪悅)의 기쁨’이 충만했던 시절이라고 합니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해인사에서는 12년을 살았습니다. 아침저녁 예불 때마다 장경각에 올라 대장경 앞에서 절하며 기도했다고 한 해인사 시절을 돌아보며 법정 스님은 “수행자로서 잔뼈가 굵은 때”라고 했습니다.
해인사에서 경학(經學)과 역경(譯經)에 관한 한 당대 최고로 꼽힌 운허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 인연으로 운허 스님을 모시고 통도사와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불교사전’ 편찬을 도왔습니다.
사전 편찬이 마무리 된 후 해인사로 돌아왔던 스님은 동국역경원 사업에 동참하면서 봉은사에 머물게 됩니다. 봉은사에서는 원래 ‘별당’으로 불렀던 작은 건물에 머물면서 그 건물 이름을 ‘다래헌’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이곳에 머물며 비로소 차(茶)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됐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이 유명한 송광사 불일암 시절입니다. 비어있던 암자 터를 골라 직접 설계도를 그려 집을 짓고 15년을 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스님의 글은 대부분 불일암에서 쓴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일암도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또 떠났습니다. 이번엔 어디인지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강원도에 화전민이 살다 떠난 오두막이라고만 했지요. ‘수류산방’이란 이름을 붙였고요.
서울 성북동 길상사도 유명하지요. 그렇지만 스님은 길상사에서는 법문만 하고 당일로 떠나면서 하루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번 책에는 스님의 생전 마지막 거처 수류산방 이야기도 여러 편 있습니다. 처음엔 이틀 정도 머리를 식히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하룻밤을 자고 보니 그대로 눌러 살고 싶어졌다는 것이죠. 이튿날엔 20리 떨어진 장터까지 가서 톱과 도끼를 사와서 땔감을 마련하는 등 꼬박 열하루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열하루가 불일암에서 보낸 몇 해보다 더 신선하고 즐겁고 진정 행복했다”고 하지요. 그렇게 불일암을 떠나 수류산방으로 옮기게 됐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수류산방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습니다. 가령 태풍이 지나가면서 개울의 다리를 쓸어가 버리면 개울물이 줄어들기 전까지는 세상과 단절됩니다. 또 한겨울에는 도끼로 얼음에 구멍을 뚫어야 마실 물이라도 구할 수 있지요. 그런 ‘원시시대’(?) 같은 이야기들을 스님은 글로 전해주었습니다.
책에서는 어떤 수행자가 두 칸짜리 흙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이 보낸 ‘오두막 편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기, 수도를 들이지 말고 새벽 3시에 일어나고 저녁 10시 이전에 눕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입안에는 말이 적고, 마음속에는 일거리와 걱정이 적고, 뱃속에는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수행자의 몸가짐이자, 오두막에서의 생활 원칙”이라고요.
‘생활 소품’ 이야기들은 스님의 ‘무소유’가 어떤 것인지 짐작케 해줍니다. 스님은 1972년 ‘손수 삭발 기념 거울’을 장만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당시 서로 삭발을 도와주던 스님이 입원하게 되자 혼자 삭발을 시도했는데 다행히 잘 됐다고 합니다. 이튿날 스님은 이를 기념해 동대문시장에서 거울 하나를 샀답니다. 그 거울 뒤에 ‘72년 7월 13일 손수 삭발 기념’이라고 붓글씨로 적었답니다.
법정 스님의 대야. 못으로 콩콩 찍어 구입한 날짜를 적은 이 대야는 길상사 진영각에 전시돼 있다. /김한수 기자
양은 대야도 있습니다. 스님은 봉은사 다래헌 시절 양은 대야 두 개를 나누어 썼답니다. 각각 ‘상복 대야’ ‘하복 대야’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상복 대야는 얼굴을 씻는 용도, 하복 대야는 허리 아래를 씻거나 걸레를 빠는 용도였답니다. 하복 대야의 가장자리엔 못 끝을 대고 망치로 콩콩 두드려 점선처럼 날짜를 새겼습니다. ‘1967년 12월 3일’. 내년 연말이면 대야도 환갑입니다.
그 대야와 거울은 지금 성북동 길상사 ‘진영각(眞影閣)’에 전시돼 있습니다.
스님의 ‘무소유’에 대해서는 물질적인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의 ‘무소유’는 생활의 모든 면에 걸쳐 있었습니다. 가령 ‘태워버린 수첩’이 그렇습니다. 스님은 해마다 연말이면 새해용으로 수첩을 한 권 샀다고 합니다. 옛날 수첩엔 맨 뒤에 주소록 페이지가 있었지요.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쓰는 칸이 구분이 돼 있었고요. 사람들은 새 수첩을 마련할 때마다 이 주소록에 연락처를 옮겨 적었지요. 스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해마다 옮겨 적는 연락처를 조금씩 줄였다고 합니다. 보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였지요. 연락처를 줄여나가던 스님은 어느 해인가에는 모아온 수첩마저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나면 마치 삭발하고 목욕을 막 마친 사람처럼 개운하고 홀가분해져 ‘이제 새 삶을 한 번 더 시작해 보자’는 의욕이 절로 솟았다고 합니다.
태우는 것과 관련해선 ‘편지를 태우다’란 글도 눈에 띕니다. 스님은 어느 날 그동안 받아둔 편지를 한꺼번에 태웠답니다. 굴뚝에서 편지 타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저것은 곧 ‘말[言語]의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지요. 아궁이에서 말이 재가 되어 스러져 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의 말이라는 것도 결국 연기와 재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점을 떠올렸다지요.
법정 스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분들이라면 옛날 생각이 날만한 내용이 많은 책입니다.
법정 스님의 '빠삐용 의자'. 지난 1월 전시회 개막식에서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오른쪽 세번째) 등 관계자들이 의자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 /김한수 기자
아울러 3월 21일까지 성북동 길상사 바로 맞은편 ‘스페이스 수퍼노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 곁에 법정 스님, 붓장난’ 전시도 추천드립니다. 스님의 붓글씨와 편지 등 100여점을 모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대중에겐 차갑고 냉정해 보였던 스님의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작들을 살펴보면 스님은 원고지에 만년필로 가로로 쓰는 글씨보다 한지에 붓으로 세로로 쓰는 글씨가 더 어울렸다는 느낌도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1975년 불일암을 지을 때 도와준 분들의 이름을 적은 상량문도 있고요, 유명한 ‘빠삐용 의자’도 불일암에서 무진동차를 타고 상경해 있습니다. 길상사 진영각에선 스님의 대야, 거울과 안경 등도 볼 수 있고요.
참고로 불일암 상량문 전문을 소개합니다. 저도 과거엔 몇몇 구절에 대해 이야기로만 듣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전문을 처음 보았습니다. 200자 원고지로 계산하면 불과 2.5매, A4 용지 반장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불일암을 짓는 자세와 이 암자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각오가 시퍼렇게 드러난 명문입니다.
법정 스님이 붓글씨로 직접 쓴 1975년 불일암 상량문. /김한수 기자
<佛日庵誌(불일암지)
上樑文(상량문)
王舍城(왕사성)에 竹林精舍(죽림정사)가 세워진 以來(이래) 出家(출가) 修行者(수행자)들은 寂靜處(적정처)에 집을 지어 道場(도량)으로 삼았다.
이 암자는 주추가 金剛寶座(금강보좌)에 뿌리내리고 벽은 常樂我淨(상락아정)으로 둘러싸였으며 지붕은 無色界天(무색계천)으로 덮이었다. 이런 집이므로 밤에 꿈이 있는 者(자)는 들어올 수 없고 입에 혀가 없는 者(자)만이 가히 머무를 수 있다.
수십 년 비어있던 慈靜庵(자정암) 터에 이제 새로 집을 지어 그 이름을 佛日庵(불일암)이라 고쳐 부른다. 이곳에 머무는 本分(본분) 衲子(납자)는 오늘 같이 흐리고 막막한 세상에 佛日(불일)을 더욱 빛나게 ᄒᆞ라는 뜻에서다. 그 소임이 어찌 가벼울 수 있겠는가. 惺惺(성성) 寂寂(적적)한 精進(정진)으로 佛祖(불조)의 慧命(혜명)을 이어받고 하늘 찌를 丈夫(장부)의 氣像(기상)으로써 佛土(불토)를 장엄해야할 것이다. 이 庵子(암자)를 세우는 데 뜻과 힘을 같이한 여러 이웃들이 이 因緣(인연)으로 다 같이 成佛(성불)하여 지이다.
南無(나무) 本師(본사)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
一九七五(일구칠오)年(년) 陰(음) 五月(오월) 초하루
上樑(상량)
庵主(암주) 法頂(법정) 合掌(합장)>
법정 스님의 입적 16주기(올해 추모 법회는 14일)를 앞두고 독특한 책이 한 권 출간됐습니다. 백형찬 작가가 쓴 ‘법정 스님이 사랑한 생활’(파람북)이라는 책입니다. 독특하다고 표현한 것은 법정 스님이 쓴 글 가운데 ‘풀과 꽃’ ‘나무’ ‘동물’ ‘차’ ‘사람’ ‘독서(책)’ ‘음악’ ‘미술’ ‘여행’ ‘글쓰기’ ‘선묵(禪墨)’ ‘공간’ ‘음식’ ‘생활소품’ 등 14가지 주제의 내용을 뽑아서 새롭게 정리-편집했기 때문입니다.
릴박스'법정 스님이 사랑한 생활' 책 표지. /파람북
법정 스님의 글을 좋아하고 많이 읽은 분이라면 각각의 글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읽은 듯한데…’ 싶은 생각도 드실 겁니다. 모두 스님이 생전에 펴낸 책에서 각각의 내용을 추려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자는 천주교 신자라고 합니다. 손오공게임 1989년 여름, 법정 스님이 수련원 원장을 맡았던 송광사 ‘출가 4박 5일’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법정 스님과의 인연이 되었답니다. 이 수련회를 계기로 문학전문지에 ‘출가 4박 5일’이란 작품을 응모해 수필가로 등단했답니다. 그런 인연 덕분인지 그는 법정 스님이 지은 모든 책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 책을 전부 읽고 앞에 말씀드린 내용의 주제별로 새 바다신2게임 로 엮어낸 것이 이 책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팬심’이면 이런 책까지 엮어낼까 싶습니다.
책에 실린 글이 모두 생전의 스님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지만 저는 책 뒷부분 ‘공간’ ‘음식’ ‘생활 소품’ 부분에 눈길이 갔습니다.
‘공간’은 스님이 살았던 ‘집’들 이야기입니다. 집 이야기는 곧 법정 스님의 ‘비우고 떠나기’의 연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속입니다.
불일암에서 스승 법정 스님(오른쪽)과 함께한 덕조 스님. /덕조 스님 제공
스님이 처음 출가해 머문 곳은 경남 통영 미래사입니다. 여기서 효봉 스님을 모셨지요. 영양실조에 가까울 정도로 ‘늘 배고프고 고생 10원야마토게임 스럽던 시절’입니다. 그렇지만 스님은 이후에 일상이 안일해졌다고 느껴질 때면 미래사를 다시 찾았고, 거기에서 초발심의 간절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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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모신 해인사에서는 12년을 살았습니다. 아침저녁 예불 때마다 장경각에 올라 대장경 앞에서 절하며 기도했다고 한 해인사 시절을 돌아보며 법정 스님은 “수행자로서 잔뼈가 굵은 때”라고 했습니다.
해인사에서 경학(經學)과 역경(譯經)에 관한 한 당대 최고로 꼽힌 운허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 인연으로 운허 스님을 모시고 통도사와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불교사전’ 편찬을 도왔습니다.
사전 편찬이 마무리 된 후 해인사로 돌아왔던 스님은 동국역경원 사업에 동참하면서 봉은사에 머물게 됩니다. 봉은사에서는 원래 ‘별당’으로 불렀던 작은 건물에 머물면서 그 건물 이름을 ‘다래헌’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이곳에 머물며 비로소 차(茶)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됐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이 유명한 송광사 불일암 시절입니다. 비어있던 암자 터를 골라 직접 설계도를 그려 집을 짓고 15년을 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스님의 글은 대부분 불일암에서 쓴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일암도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또 떠났습니다. 이번엔 어디인지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강원도에 화전민이 살다 떠난 오두막이라고만 했지요. ‘수류산방’이란 이름을 붙였고요.
서울 성북동 길상사도 유명하지요. 그렇지만 스님은 길상사에서는 법문만 하고 당일로 떠나면서 하루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번 책에는 스님의 생전 마지막 거처 수류산방 이야기도 여러 편 있습니다. 처음엔 이틀 정도 머리를 식히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하룻밤을 자고 보니 그대로 눌러 살고 싶어졌다는 것이죠. 이튿날엔 20리 떨어진 장터까지 가서 톱과 도끼를 사와서 땔감을 마련하는 등 꼬박 열하루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열하루가 불일암에서 보낸 몇 해보다 더 신선하고 즐겁고 진정 행복했다”고 하지요. 그렇게 불일암을 떠나 수류산방으로 옮기게 됐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수류산방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습니다. 가령 태풍이 지나가면서 개울의 다리를 쓸어가 버리면 개울물이 줄어들기 전까지는 세상과 단절됩니다. 또 한겨울에는 도끼로 얼음에 구멍을 뚫어야 마실 물이라도 구할 수 있지요. 그런 ‘원시시대’(?) 같은 이야기들을 스님은 글로 전해주었습니다.
책에서는 어떤 수행자가 두 칸짜리 흙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이 보낸 ‘오두막 편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기, 수도를 들이지 말고 새벽 3시에 일어나고 저녁 10시 이전에 눕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입안에는 말이 적고, 마음속에는 일거리와 걱정이 적고, 뱃속에는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수행자의 몸가짐이자, 오두막에서의 생활 원칙”이라고요.
‘생활 소품’ 이야기들은 스님의 ‘무소유’가 어떤 것인지 짐작케 해줍니다. 스님은 1972년 ‘손수 삭발 기념 거울’을 장만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당시 서로 삭발을 도와주던 스님이 입원하게 되자 혼자 삭발을 시도했는데 다행히 잘 됐다고 합니다. 이튿날 스님은 이를 기념해 동대문시장에서 거울 하나를 샀답니다. 그 거울 뒤에 ‘72년 7월 13일 손수 삭발 기념’이라고 붓글씨로 적었답니다.
법정 스님의 대야. 못으로 콩콩 찍어 구입한 날짜를 적은 이 대야는 길상사 진영각에 전시돼 있다. /김한수 기자
양은 대야도 있습니다. 스님은 봉은사 다래헌 시절 양은 대야 두 개를 나누어 썼답니다. 각각 ‘상복 대야’ ‘하복 대야’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상복 대야는 얼굴을 씻는 용도, 하복 대야는 허리 아래를 씻거나 걸레를 빠는 용도였답니다. 하복 대야의 가장자리엔 못 끝을 대고 망치로 콩콩 두드려 점선처럼 날짜를 새겼습니다. ‘1967년 12월 3일’. 내년 연말이면 대야도 환갑입니다.
그 대야와 거울은 지금 성북동 길상사 ‘진영각(眞影閣)’에 전시돼 있습니다.
스님의 ‘무소유’에 대해서는 물질적인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의 ‘무소유’는 생활의 모든 면에 걸쳐 있었습니다. 가령 ‘태워버린 수첩’이 그렇습니다. 스님은 해마다 연말이면 새해용으로 수첩을 한 권 샀다고 합니다. 옛날 수첩엔 맨 뒤에 주소록 페이지가 있었지요.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쓰는 칸이 구분이 돼 있었고요. 사람들은 새 수첩을 마련할 때마다 이 주소록에 연락처를 옮겨 적었지요. 스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해마다 옮겨 적는 연락처를 조금씩 줄였다고 합니다. 보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였지요. 연락처를 줄여나가던 스님은 어느 해인가에는 모아온 수첩마저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나면 마치 삭발하고 목욕을 막 마친 사람처럼 개운하고 홀가분해져 ‘이제 새 삶을 한 번 더 시작해 보자’는 의욕이 절로 솟았다고 합니다.
태우는 것과 관련해선 ‘편지를 태우다’란 글도 눈에 띕니다. 스님은 어느 날 그동안 받아둔 편지를 한꺼번에 태웠답니다. 굴뚝에서 편지 타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저것은 곧 ‘말[言語]의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지요. 아궁이에서 말이 재가 되어 스러져 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의 말이라는 것도 결국 연기와 재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점을 떠올렸다지요.
법정 스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분들이라면 옛날 생각이 날만한 내용이 많은 책입니다.
법정 스님의 '빠삐용 의자'. 지난 1월 전시회 개막식에서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오른쪽 세번째) 등 관계자들이 의자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 /김한수 기자
아울러 3월 21일까지 성북동 길상사 바로 맞은편 ‘스페이스 수퍼노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 곁에 법정 스님, 붓장난’ 전시도 추천드립니다. 스님의 붓글씨와 편지 등 100여점을 모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대중에겐 차갑고 냉정해 보였던 스님의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작들을 살펴보면 스님은 원고지에 만년필로 가로로 쓰는 글씨보다 한지에 붓으로 세로로 쓰는 글씨가 더 어울렸다는 느낌도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1975년 불일암을 지을 때 도와준 분들의 이름을 적은 상량문도 있고요, 유명한 ‘빠삐용 의자’도 불일암에서 무진동차를 타고 상경해 있습니다. 길상사 진영각에선 스님의 대야, 거울과 안경 등도 볼 수 있고요.
참고로 불일암 상량문 전문을 소개합니다. 저도 과거엔 몇몇 구절에 대해 이야기로만 듣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전문을 처음 보았습니다. 200자 원고지로 계산하면 불과 2.5매, A4 용지 반장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불일암을 짓는 자세와 이 암자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각오가 시퍼렇게 드러난 명문입니다.
법정 스님이 붓글씨로 직접 쓴 1975년 불일암 상량문. /김한수 기자
<佛日庵誌(불일암지)
上樑文(상량문)
王舍城(왕사성)에 竹林精舍(죽림정사)가 세워진 以來(이래) 出家(출가) 修行者(수행자)들은 寂靜處(적정처)에 집을 지어 道場(도량)으로 삼았다.
이 암자는 주추가 金剛寶座(금강보좌)에 뿌리내리고 벽은 常樂我淨(상락아정)으로 둘러싸였으며 지붕은 無色界天(무색계천)으로 덮이었다. 이런 집이므로 밤에 꿈이 있는 者(자)는 들어올 수 없고 입에 혀가 없는 者(자)만이 가히 머무를 수 있다.
수십 년 비어있던 慈靜庵(자정암) 터에 이제 새로 집을 지어 그 이름을 佛日庵(불일암)이라 고쳐 부른다. 이곳에 머무는 本分(본분) 衲子(납자)는 오늘 같이 흐리고 막막한 세상에 佛日(불일)을 더욱 빛나게 ᄒᆞ라는 뜻에서다. 그 소임이 어찌 가벼울 수 있겠는가. 惺惺(성성) 寂寂(적적)한 精進(정진)으로 佛祖(불조)의 慧命(혜명)을 이어받고 하늘 찌를 丈夫(장부)의 氣像(기상)으로써 佛土(불토)를 장엄해야할 것이다. 이 庵子(암자)를 세우는 데 뜻과 힘을 같이한 여러 이웃들이 이 因緣(인연)으로 다 같이 成佛(성불)하여 지이다.
南無(나무) 本師(본사)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
一九七五(일구칠오)年(년) 陰(음) 五月(오월) 초하루
上樑(상량)
庵主(암주) 法頂(법정) 合掌(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