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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월호 기사입니다.
나전칠기는 옻칠한 목기 표면에 자개를 붙여 완성하는 전통 공예다. 나전장 이형만은 60여 년간 시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전칠기의 맥을 이어왔다. 이 장인은 나전칠기에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숨결을 더하며 나전칠기의 부흥을 꿈꾼다.
나전칠기는 근본적으로 어둠과 빛을 이용한 전통 공예다. 자개를 잘라 만든 학·당초·매화 등의 문양이 어두운 옻칠을 파고들며 더욱 선명하고 날카로이 빛난다. 어느 하나 튀는 곳 없이, 어둠과 빛은 서로를 완 바다이야기부활 벽하게 품어주며 세련된 아름다움을 형성한다.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보유자 이형만 장인.
이형만 장인(79)은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보유자다. 이 장인은 나전칠기가 대중으로부터 환영받건 외면받건, 황금성릴게임 변화하는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나전칠기 작업을 이어왔다. 나전칠기가 가구와 생활 소품으로 큰 인기를 끌던 1970년대, 값싼 공예품의 수입으로 쇠락의 길을 걷던 1990년대 그리고 나전칠기의 전성기를 다시 꿈꾸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나전칠기를 만들어온 세월만 60여 년. 이 장인은 “전통 공예에서도 창의성이 중요하 야마토통기계 다”는 신념을 가지고 때론 독특하고, 때론 대담하고, 때론 개성 강한 나전칠기의 문양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시대와 발맞춰 걷고, 함께 호흡하며 나전칠기의 부흥을 꿈꾸는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다.
우연한 사건, 그를 나전칠기 세계로 이끌어
모바일바다이야기 어느 금요일 오후, 강원 원주시 단계동의 전통공예연구소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캐한 옻칠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40살은 넘게 나이 차이가 나 보이는 문하생 4명과 막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 장인과 마주 앉았다. 이 장인은 “우연한 계기로 나전칠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기자에게 말하며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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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인은 1946년 나전칠기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화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친구들이랑 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오른쪽 팔이 부러졌는데,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뼈가 세 토막이 났다. 그래서 예정된 중학교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공부에 욕심이 많던 그는 우연히 경남기술원양성소(공예학교)를 알게 됐다. ‘무상교육’이라는 조건이 마음에 들어 지원서를 낸 후 1960년 3월 입학했다. 나전칠기의 거장, 고(故) 일사 김봉룡(국가무형유산 제10호 ‘나전장’ 기능보유자) 선생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어린 나이에 힘들다는 이유로 말썽도 많이 피웠어요. 한번은 김 선생님이 출타하신 틈을 타 어깨너머로 봤던 옷칠을 직접 했어요. 자신만만하게 상 4개에 옻칠을 쓱쓱 했는데, 두 시간이 지나자 칠이 쭈글쭈글 올라왔어요. 선생님에게 혼날 게 두려워 집으로 부리나케 도망갔는데 며칠 뒤 선생님에게 다시 끌려오고 그랬죠.”
1963년 김봉룡 선생은 학교를 나와 개인 공방을 차리며평소 눈여겨본 이 장인을 데리고 왔다. 이 장인은 김 선생으로부터 일대일 도제식으로 전통 기법을 배우며 이수자, 전수자, 전수 조교, 후보자 등의 단계를 거쳤다. 스승이 타계한 후인 1996년, 이 장인은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45개 공정을 통해 탄생하는 종합예술, 나전칠기
이 장인은 나전칠기의 제작 과정을 “기술과 정성의 결합”이라 설명했다. 이 장인의 경우 한 작품을 만들기까지 약 45개의 제작 공정을 거친다.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은 짧게는 6개월, 장롱과 같은 대작을 만드는 데는 3년 여가 걸린다.
이형만 장인이 실톱을 이용해 자개를 잘라 계획된 도안에 따라 문양을 만들고 있다. 이 기술은 ‘줄음질’ 기법으로 고도의 숙련도와 집중력을 요한다.
나전칠기 제작 과정은 양질의 옻나무 수액과 자개(조개·전복 등의 껍데기)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장인은 오색 빛이 아름다운 전복 껍데기를 주로 이용한다. 장인이 낡은 원목 함에서 중국산과 국내산 전복 껍데기를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아롱진 물결 빛이 돋보이는 국산 자개에 비해, 중국산은 푸른 단색이 도드라져 빛깔이 단조로웠다.
“해상 오염 때문에 국내산 전복 생산량이 줄고 수입량이 늘고 있어요. 그마저도 대부분이 양식이에요. 양식 전복은 보통 3년 정도 키워서 파는데, 나전 재료로 쓰려면 5년 이상은 돼야 가공할 수 있는 두께가 나와요. 이 때문에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고민이 깊어요.”
옻나무 수액은 강원 원주산을 이용한다. 원주는 최고급 옻나무 산지로 손꼽힌다. 김봉룡 선생이 좋은 옻을 찾아 고향인 통영을 떠나 원주로 터전을 옮겼을 때, 이 장인도 스승을 따라 원주에 정착했다. 4㎏당 중국산 옻이 35만원인 것과 비교해 원주산 옻은 230만 원 정도로 매우 비싼 편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원주 옻나무 수액은 옻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의 함량이 높아 매끈하고 단단한 느낌의 칠을 완성할 수 있어 이 장인은 원주산을 고집하고 있다.
재료가 갖춰진 후, 이 장인은 기초 작업으로 백골(나전칠기 제작을 위해 목재로 짠 기본 틀)을 제작하고 문양 디자인을 구상한다. 백골이 마련되면 이후 옻칠, 삼배 접착, 자개 감입 등의 공정을 거쳐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 이 장인이 가장 공들이는 공정은 작품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문양 디자인’이다. 그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주는 젊은 문하생과의 대화, 취미로 관찰한 한옥의 서까래·처마·기둥이 만들어낸 선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미감을 구축해왔다. 자개 문양을 확연히 줄이고 옻칠의 검은 여백을 적극적으로 살린 대담한 문양을 선보이는 식이다.
자개 문양 위에 원하는 색을 덧입혀 색감을 완성한다.
“아무리 도안이 마음에 들어도 같은 작품을 3점 이상 만들지 않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 가능한 한 다른 디자인, 다른 문양을 그리기 위해 계속 아이디어를 내려고 해요.”
현재 두 아들이 이 장인의 기술을 이어받고 있다.큰아들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에서 교육자로 활동하고, 둘째 아들은 장인 곁에서 그의 작업을 돕는다.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나전칠기
2012년, 이 장인이 10년간 재직하며 25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한 배재대학교 칠예과가 폐과됐다. 이 사건은 이 장인에게 변환점이 되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고리타분한 것이라 여겨지는 전통 공예를 현대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할 방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옻칠을 한 백골에 자개를 붙여 작품 한 점을 만드는 과정은 오랜 세월 속에서 다듬어진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 전통 기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으려면 현대와도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가 문하생을 가르칠 때도 강조하는 것이 ‘전통의 현대화’인 이유다. 현재 서울에 있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나전칠기를 가르치고, 그 외 시간엔 원주의 전통공예연구소에서 나전칠기 이수자 과정을 밟고 있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그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문하생들이 젊은 감각을 전통 공예에 불어넣도록 돕고 있다.
이 장인은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 제작에 전념 중이다. 3년 뒤, 작품 50점 이상을 전시하는 게 그의 목표이다. 수업이 끝난 후 저녁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네 시간 동안 작업에 매진한다. 대궐반, 예물함, 경대, 찻상 등 현재까지 20여 점을 완성했다. 여든에 가까워진 나이, 기력은 쇠하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작업 동력은 예나 지금이 ‘정직함’과 ‘인내심’이다. 나전칠기는 오랜 세월을 버텨온 장인의 단단한 숨결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재탄생 중이다.
무궁화덩굴무늬 호족반
매화무늬 좌경
덩굴무늬함
어둠에 빛을 상감하는 기술‘나전칠기’ 이야기
나전칠기는 얇게 간 조개·전복 등의 껍데기를 다양한 형태로 오려 기물 표면에 장식한 공예품이며, 이를 제작하는 장인을 나전장이라 한다. 우리 민족은 청동기시대부터 옻칠을 사용해왔고, 옻칠에 조개 장식을 더한 나전칠기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발전하여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자개 문양 기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라 기하학적 무늬를 만드는 ‘끊음질’과, 실톱으로 문질러 매화·당초 무늬 등을 만드는 ‘줄음질’이 있다. 이형만 장인은 줄음질 기능보유자이다.
글 윤혜준 기자
나전칠기는 옻칠한 목기 표면에 자개를 붙여 완성하는 전통 공예다. 나전장 이형만은 60여 년간 시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전칠기의 맥을 이어왔다. 이 장인은 나전칠기에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숨결을 더하며 나전칠기의 부흥을 꿈꾼다.
나전칠기는 근본적으로 어둠과 빛을 이용한 전통 공예다. 자개를 잘라 만든 학·당초·매화 등의 문양이 어두운 옻칠을 파고들며 더욱 선명하고 날카로이 빛난다. 어느 하나 튀는 곳 없이, 어둠과 빛은 서로를 완 바다이야기부활 벽하게 품어주며 세련된 아름다움을 형성한다.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보유자 이형만 장인.
이형만 장인(79)은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보유자다. 이 장인은 나전칠기가 대중으로부터 환영받건 외면받건, 황금성릴게임 변화하는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나전칠기 작업을 이어왔다. 나전칠기가 가구와 생활 소품으로 큰 인기를 끌던 1970년대, 값싼 공예품의 수입으로 쇠락의 길을 걷던 1990년대 그리고 나전칠기의 전성기를 다시 꿈꾸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나전칠기를 만들어온 세월만 60여 년. 이 장인은 “전통 공예에서도 창의성이 중요하 야마토통기계 다”는 신념을 가지고 때론 독특하고, 때론 대담하고, 때론 개성 강한 나전칠기의 문양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시대와 발맞춰 걷고, 함께 호흡하며 나전칠기의 부흥을 꿈꾸는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다.
우연한 사건, 그를 나전칠기 세계로 이끌어
모바일바다이야기 어느 금요일 오후, 강원 원주시 단계동의 전통공예연구소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캐한 옻칠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40살은 넘게 나이 차이가 나 보이는 문하생 4명과 막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 장인과 마주 앉았다. 이 장인은 “우연한 계기로 나전칠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기자에게 말하며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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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인은 1946년 나전칠기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화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친구들이랑 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오른쪽 팔이 부러졌는데,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뼈가 세 토막이 났다. 그래서 예정된 중학교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공부에 욕심이 많던 그는 우연히 경남기술원양성소(공예학교)를 알게 됐다. ‘무상교육’이라는 조건이 마음에 들어 지원서를 낸 후 1960년 3월 입학했다. 나전칠기의 거장, 고(故) 일사 김봉룡(국가무형유산 제10호 ‘나전장’ 기능보유자) 선생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어린 나이에 힘들다는 이유로 말썽도 많이 피웠어요. 한번은 김 선생님이 출타하신 틈을 타 어깨너머로 봤던 옷칠을 직접 했어요. 자신만만하게 상 4개에 옻칠을 쓱쓱 했는데, 두 시간이 지나자 칠이 쭈글쭈글 올라왔어요. 선생님에게 혼날 게 두려워 집으로 부리나케 도망갔는데 며칠 뒤 선생님에게 다시 끌려오고 그랬죠.”
1963년 김봉룡 선생은 학교를 나와 개인 공방을 차리며평소 눈여겨본 이 장인을 데리고 왔다. 이 장인은 김 선생으로부터 일대일 도제식으로 전통 기법을 배우며 이수자, 전수자, 전수 조교, 후보자 등의 단계를 거쳤다. 스승이 타계한 후인 1996년, 이 장인은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45개 공정을 통해 탄생하는 종합예술, 나전칠기
이 장인은 나전칠기의 제작 과정을 “기술과 정성의 결합”이라 설명했다. 이 장인의 경우 한 작품을 만들기까지 약 45개의 제작 공정을 거친다.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은 짧게는 6개월, 장롱과 같은 대작을 만드는 데는 3년 여가 걸린다.
이형만 장인이 실톱을 이용해 자개를 잘라 계획된 도안에 따라 문양을 만들고 있다. 이 기술은 ‘줄음질’ 기법으로 고도의 숙련도와 집중력을 요한다.
나전칠기 제작 과정은 양질의 옻나무 수액과 자개(조개·전복 등의 껍데기)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장인은 오색 빛이 아름다운 전복 껍데기를 주로 이용한다. 장인이 낡은 원목 함에서 중국산과 국내산 전복 껍데기를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아롱진 물결 빛이 돋보이는 국산 자개에 비해, 중국산은 푸른 단색이 도드라져 빛깔이 단조로웠다.
“해상 오염 때문에 국내산 전복 생산량이 줄고 수입량이 늘고 있어요. 그마저도 대부분이 양식이에요. 양식 전복은 보통 3년 정도 키워서 파는데, 나전 재료로 쓰려면 5년 이상은 돼야 가공할 수 있는 두께가 나와요. 이 때문에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고민이 깊어요.”
옻나무 수액은 강원 원주산을 이용한다. 원주는 최고급 옻나무 산지로 손꼽힌다. 김봉룡 선생이 좋은 옻을 찾아 고향인 통영을 떠나 원주로 터전을 옮겼을 때, 이 장인도 스승을 따라 원주에 정착했다. 4㎏당 중국산 옻이 35만원인 것과 비교해 원주산 옻은 230만 원 정도로 매우 비싼 편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원주 옻나무 수액은 옻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의 함량이 높아 매끈하고 단단한 느낌의 칠을 완성할 수 있어 이 장인은 원주산을 고집하고 있다.
재료가 갖춰진 후, 이 장인은 기초 작업으로 백골(나전칠기 제작을 위해 목재로 짠 기본 틀)을 제작하고 문양 디자인을 구상한다. 백골이 마련되면 이후 옻칠, 삼배 접착, 자개 감입 등의 공정을 거쳐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 이 장인이 가장 공들이는 공정은 작품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문양 디자인’이다. 그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주는 젊은 문하생과의 대화, 취미로 관찰한 한옥의 서까래·처마·기둥이 만들어낸 선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미감을 구축해왔다. 자개 문양을 확연히 줄이고 옻칠의 검은 여백을 적극적으로 살린 대담한 문양을 선보이는 식이다.
자개 문양 위에 원하는 색을 덧입혀 색감을 완성한다.
“아무리 도안이 마음에 들어도 같은 작품을 3점 이상 만들지 않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 가능한 한 다른 디자인, 다른 문양을 그리기 위해 계속 아이디어를 내려고 해요.”
현재 두 아들이 이 장인의 기술을 이어받고 있다.큰아들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에서 교육자로 활동하고, 둘째 아들은 장인 곁에서 그의 작업을 돕는다.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나전칠기
2012년, 이 장인이 10년간 재직하며 25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한 배재대학교 칠예과가 폐과됐다. 이 사건은 이 장인에게 변환점이 되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고리타분한 것이라 여겨지는 전통 공예를 현대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할 방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옻칠을 한 백골에 자개를 붙여 작품 한 점을 만드는 과정은 오랜 세월 속에서 다듬어진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 전통 기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으려면 현대와도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가 문하생을 가르칠 때도 강조하는 것이 ‘전통의 현대화’인 이유다. 현재 서울에 있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나전칠기를 가르치고, 그 외 시간엔 원주의 전통공예연구소에서 나전칠기 이수자 과정을 밟고 있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그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문하생들이 젊은 감각을 전통 공예에 불어넣도록 돕고 있다.
이 장인은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 제작에 전념 중이다. 3년 뒤, 작품 50점 이상을 전시하는 게 그의 목표이다. 수업이 끝난 후 저녁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네 시간 동안 작업에 매진한다. 대궐반, 예물함, 경대, 찻상 등 현재까지 20여 점을 완성했다. 여든에 가까워진 나이, 기력은 쇠하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작업 동력은 예나 지금이 ‘정직함’과 ‘인내심’이다. 나전칠기는 오랜 세월을 버텨온 장인의 단단한 숨결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재탄생 중이다.
무궁화덩굴무늬 호족반
매화무늬 좌경
덩굴무늬함
어둠에 빛을 상감하는 기술‘나전칠기’ 이야기
나전칠기는 얇게 간 조개·전복 등의 껍데기를 다양한 형태로 오려 기물 표면에 장식한 공예품이며, 이를 제작하는 장인을 나전장이라 한다. 우리 민족은 청동기시대부터 옻칠을 사용해왔고, 옻칠에 조개 장식을 더한 나전칠기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발전하여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자개 문양 기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라 기하학적 무늬를 만드는 ‘끊음질’과, 실톱으로 문질러 매화·당초 무늬 등을 만드는 ‘줄음질’이 있다. 이형만 장인은 줄음질 기능보유자이다.
글 윤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