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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mega.info
리처드 1세(1157-1199) 때부터 시작된 영국 검시관 제도가 팔백여 년을 넘어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원래 이 제도는 왕실 세금을 걷기 위한 용도였다. 누군가 '부자연스럽게' 죽으면 검시관이 달려가서 살인인지 자살인지를 판단했다. 살인이면 범인의 재산을, 자살이면 고인의 재산을 왕실이 몰수했으니 말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중세식 세입 확보 방안이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이 돈벌이 제도가 지금은 죽은 이의 존엄을 지키는 장치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제도의 재활용이랄까. 팔백 년 전 영국 왕이 세금 걷으려고 만 릴게임뜻 든 제도를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배심원이 진실을 묻는다
영국 검시관 제도의 핵심은 '사인심문'이다. 검시관이 배심원을 소집해 공개 심문을 진행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앉아 죽음의 진실을 따진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죽었다면? 무조건 배심원을 소집한다. 경찰관 직무 집행 중 사망했다면? 역시 배심원이 릴게임가입머니 나선다. 구금 시설에서의 죽음, 국가 권력과 연관된 죽음 앞에서 영국은 원칙을 굽히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수사 중이니 조용히 기다려 달라"는 공지 한 줄로 끝났을 사건들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공개 심문을 한다. 투명성이 생명이다. 2024년 한 해에만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17만 4900건이 검시관에게 보고되었고, 한국릴게임 그중 8만 1185건의 부검이 실시되었다. 보고된 사망의 46%에서 부검이 이뤄진 셈이다. 의심스러운 죽음 앞에서 국가는 숨지 않는다.
독립성이라는 이름의 원칙
영국 검시관은 독립적인 사법관이다. 지방 정부가 임명하지만 업무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 의사이거나 변호사여야 하고, 2009년부터는 아예 변호사만 검시관이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될 수 있다. 전문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한 셈이다. 경찰도, 검찰도, 정치인도 검시관의 판단에 손댈 수 없다.
우리는 어떤가? 검사가 검시권을 가지고 있지만 현장에 직접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찰이 검시를 하고,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제야 법의학 전문가에게 부검을 의뢰한다. 책임 소재는 애매하고, 전문성은 뒷전이다. 황금성게임랜드 초동 수사 단계에서 철저한 검시가 이뤄지지 못해 증거가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된다. 그사이 진실은 영영 사라진다.
조선보다 못한 검시 선진국
더 재미있는 건 우리 조상들이 영국보다 훨씬 꼼꼼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5번까지 검시를 실시했다. 검시관들끼리 의견 교환을 못하게 해서 공정성을 확보했다. '중수무원록'을 참고해 근거를 명확히 하고, 검시 보고서인 '시장'을 제출해야 했다.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해부는 못했지만 시신을 절개하지 않는 방법만으로도 놀라운 성과를 냈다.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여겼다.
그런데 현대 한국은 조선만도 못하다. 행정검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지능범이 살인을 병사나 사고사로 위장해도 비전문가의 검안만으로 매장이 가능하다. 형사사법의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셈이다. 과학수사가 발달했다는 이십일 세기에 우리는 오히려 퇴보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영국 검시관 제도에서 배울 점은 명확하다.
첫째, 독립성. 검시는 수사 기관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경찰도, 검찰도 아닌 제3의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법무부나 행정안전부 소속이 아닌 국무총리 직속으로 검시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이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부처 간 밥그릇 싸움에 묻혔다. 검시권을 누가 쥐느냐가 권력이 되는 나라에서 죽은 이의 존엄 따위는 뒷전이다.
둘째, 전문성. 우리나라는 법의학·병리학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 검시 관련 법규도 여러 개별 법령에 분산되어 있다. 검시관이 되려면 간호사나 임상병리사 자격이 필요하다는데, 정작 '검시관'은 공식 자격증도 아니고 그냥 조직 내 호칭일 뿐이다. 전문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부검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부검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셋째, 투명성. 공개 심문 제도는 아직 우리에게 먼 나라 이야기다. 국민참여재판도 피고인이 원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고, 배심원 평결은 판사에게 권고 사항일 뿐이다.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시민이 직접 나설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의문사 진상규명은 유족의 끈질긴 투쟁에 의존한다.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유족이 나서서 국가를 압박해야 진실에 조금 다가간다.
죽음 앞의 평등을 꿈꾸며
영국에서는 유치장에서 죽어도, 경찰과 부딪혀 죽어도 반드시 시민 배심원이 진실을 묻는다. 권력자든 노숙인이든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검시관은 죽은 이의 대변인이 되어 국가 권력에 맞선다. 리처드 1세는 돈을 벌려고 검시관 제도를 만들었지만, 역사는 그것을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 바꿔놓았다.
우리는 언제쯤 죽음 앞에 평등한 나라가 될까? 검시 제도 개선이 이십여 년째 논의만 되고 있는 동안,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부처 간 이권 다툼에 발목 잡힌 개혁안들은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인다.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치권은 귀를 막는다.
조선시대 5번 검시의 정신으로 돌아가든, 영국의 독립 검시관 제도를 받아들이든, 뭐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죽어서도 억울한 사람이 없는 나라. 그게 그렇게 어려운 꿈인가? 세금 걷으려던 중세 영국 왕도 해낸 일을 이십일 세기 대한민국이 못할 이유는 없다. 필요한 건 예산도, 기술도 아니다. 죽은 이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의지뿐이다.
▲영국 검시관 제도에 대한 설명. ⓒ 필자 제공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그런데 웃기는 건, 이 돈벌이 제도가 지금은 죽은 이의 존엄을 지키는 장치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제도의 재활용이랄까. 팔백 년 전 영국 왕이 세금 걷으려고 만 릴게임뜻 든 제도를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배심원이 진실을 묻는다
영국 검시관 제도의 핵심은 '사인심문'이다. 검시관이 배심원을 소집해 공개 심문을 진행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앉아 죽음의 진실을 따진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죽었다면? 무조건 배심원을 소집한다. 경찰관 직무 집행 중 사망했다면? 역시 배심원이 릴게임가입머니 나선다. 구금 시설에서의 죽음, 국가 권력과 연관된 죽음 앞에서 영국은 원칙을 굽히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수사 중이니 조용히 기다려 달라"는 공지 한 줄로 끝났을 사건들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공개 심문을 한다. 투명성이 생명이다. 2024년 한 해에만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17만 4900건이 검시관에게 보고되었고, 한국릴게임 그중 8만 1185건의 부검이 실시되었다. 보고된 사망의 46%에서 부검이 이뤄진 셈이다. 의심스러운 죽음 앞에서 국가는 숨지 않는다.
독립성이라는 이름의 원칙
영국 검시관은 독립적인 사법관이다. 지방 정부가 임명하지만 업무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 의사이거나 변호사여야 하고, 2009년부터는 아예 변호사만 검시관이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될 수 있다. 전문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한 셈이다. 경찰도, 검찰도, 정치인도 검시관의 판단에 손댈 수 없다.
우리는 어떤가? 검사가 검시권을 가지고 있지만 현장에 직접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찰이 검시를 하고,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제야 법의학 전문가에게 부검을 의뢰한다. 책임 소재는 애매하고, 전문성은 뒷전이다. 황금성게임랜드 초동 수사 단계에서 철저한 검시가 이뤄지지 못해 증거가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된다. 그사이 진실은 영영 사라진다.
조선보다 못한 검시 선진국
더 재미있는 건 우리 조상들이 영국보다 훨씬 꼼꼼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5번까지 검시를 실시했다. 검시관들끼리 의견 교환을 못하게 해서 공정성을 확보했다. '중수무원록'을 참고해 근거를 명확히 하고, 검시 보고서인 '시장'을 제출해야 했다.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해부는 못했지만 시신을 절개하지 않는 방법만으로도 놀라운 성과를 냈다.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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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검시관 제도에서 배울 점은 명확하다.
첫째, 독립성. 검시는 수사 기관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경찰도, 검찰도 아닌 제3의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법무부나 행정안전부 소속이 아닌 국무총리 직속으로 검시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이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부처 간 밥그릇 싸움에 묻혔다. 검시권을 누가 쥐느냐가 권력이 되는 나라에서 죽은 이의 존엄 따위는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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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검시관 제도에 대한 설명. ⓒ 필자 제공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